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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축적의 시간

로얄곰돌이 2021. 2. 26. 15:31

오늘 SNS에서 핫하게 돌던 칼럼을 재밌게 읽었다.

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226029011&wlog_tag3=facebook_share&fbclid=IwAR0y_G11BP6IMGTV86rUtxQfT3qeqAeV2jrY0TwLCu7BVbXt5R0anymycIg

워낙 이뤄놓은 게 많은 분이라 뭐 나랑 비교하긴 좀 그렇고... (어쩜 본인이 '삽질의 시간'이라고 일컫는 그 시간들도 커리어우먼이 영어와 일어로 솰라솰라 의사소통하면서 야근하는 모습이 그려지는지... 여러모로 멋지다.)

10년 이상 짬밥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터득하는 같잖은 인생의 진리같은 게 다들 한두개씩은 생기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칼럼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축적의 시간'이라 부른다. 

나야 지금 업무 시간에 이렇게 땡땡이를 치고 있지만, 우리 직장인들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소모적이고 지루한가. 거기다 대부분은 하기 싫은 일들 투성이다. 내 직업을 예로 들자면 괜찮은 기사 하나를 써내기 위해서 참 별 것 아닌 것 같은 수많은 인터뷰이를 거쳐야 한다. 전화가 됐든, 직접 만나서 하든 기자로서 누군가를 만날 때는 항상 준비가 필요하고, 그 시간동안 몰입해야 하며, 또 이후에 이것저것 정보들을 조합해서 글로 엮어내야 하는 참으로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게 한번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쉼없이 계속돼야 한다. 왜냐하면 기사는 휘발성 상품이므로ㅠㅠ. 즉 오늘 세상을 뒤흔들 특종을 썼더라도 내일 기사거리를 준비해놔야 한다는 멍에를 지고 산다. 

또 기자들이 얻고 싶은, 빨대, 선수 등등 어떻게 불리든, 정보를 잘 알면서 말도 잘 해주는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견 같잖아 보이는 사람 즉, (내가 정말정말정말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인) '영양가 없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마주해야 한다. 많은 선후배들이 그 영양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개무시하는 것도 많이 봤다. 약속 펑크내는 건 여사고 멋대로 미루고, 직급 낮다고 기분 나빠하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다보면 어느 날 빛나는 인맥이 돼 있는 경우가 꽤 있더라는 게 나의 10+알파년간 기자 생활에서 얻은 교훈이다. 말하자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함부로 차지 말라는 거고, 거기에 쏟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거다.(그런데도 왜 요즘엔 연락 안 하냐고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죄송합니다ㅠㅠ) 

이런 얘길 수습들한테 초창기에 몇 번 해주는데 잘 알아 듣는 사람이 있고, 개무시하고 위만 바라보면서 달려가는 후배들도 있더라. (그들에게 역시 나도 영양가 없는 사람 중에 하나로 취급 받음;;;) 물론 그렇게 '알짜'만 챙기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나 명성으로나 잘 되는 경우도 많이 봤지만 그냥 내 기준, 내 삶의 방식에서는 안 맞는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암튼 근데 나는 그렇게 축적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기자 생활이 안 맞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단호하고 확고하게 판단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영 의미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만 놀고 남은 오후 축적의 시간을 또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