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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지하철 선반

로얄곰돌이 2022. 5. 11. 11:31

예민하게 살고 싶지 않지만, 일상의 어느 한 부분 한 부분들이 거슬려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거창한 게 그렇게 화가 나면 그나마 좀 나으련만, 별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라서 더 짜증이 나고 답답해서 미치겠다. 그 중에 제일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화는 지나치게 났던 게 지하철 선반 문제다. 언젠가부터 내가 주로 이용하는 2,3호선에 새 지하철이 한 두대씩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놈의 지하철에 선반이 하나도 없는거다. 10년 넘게 노트북 넣은 배낭을 거북이 등짝처럼 메고 다닌 탓에 지하철 타면 빈 선반부터 찾는 게 일이었는데, 그 좋은, 유용한, 편안한, 쾌적함과 해방감을 선사해주는, 이용자 대중들의 허리와 어깨와 무릎 관절을 가볍게 해주는 그 선반이 없어진거다. 좀 돌아 가더라도 버스보다 지하철을 선호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이 선반이었음.(지금보니 의외로 큰 문제였잖아?) 그런데 이 썅노무 새 지하철은 선반이 없다. 9호선은 그나마 드문드문 선반을 설치해두기라도 해서 출근 시간에 그 좁은 선반이나마 가방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는데 이 개같은 새 지하철은 그 선반 마저도 없애버렸더라. 너무 황당해서 기사라도 나왔나 찾아봤더니 나말고도 불편한 사람이 많은지 문의가 많았나보다. 근데 서울교통공사 측 변명이랍시고 나온 게 분실물이 많다, 관리가 어렵다 정도다.

지들 관리하는 거 힘들면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불편한 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보다? 이런 생각이 든 결정적 계기는 선반인데, 그 선반 때문에 그동안 좀 별로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맘에 안 들기 시작했다. 선반 없앤 것도 열받는데 더 화딱지가 나는 건 새 지하철이랍시고 여기저기 달려있는 디스플레이에서 반복해서 주위 사람 불편하지 않게 배낭을 메고 있지 말라느니 앞으로 메라느니 끊임없이 훈장질을 해댄다는 거다. 러시아워에 꽉꽉 들어찬 지하철에서 앞으로 메든 뒤로 메든 가방이 차지하는 공간 자체를 줄일 수가 없는 게 더 문제라는 건 관리하기 귀찮은 저것들, 이런 거 결정하는 인간들 대가리에는 아예 없는 모양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고 사사건건 거슬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캠페인 방송은 주구장창 시끄럽게 틀어대는지, 역 이름 하나 알려주면서 사족은 뭐가 이렇게 긴지(해외에서 지하철 타보면 역 이름만 또렷하게 방송해주거나 환승역만 좀 길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잘 못 알아듣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게 훨씬 편했다), 어지럽게 광고는 덕지덕지 발라놓고 적자 타령은 왜 하는지, 전장연 ‘불법’ 시위 때문에 지하철 늦는다고 1분에 한번씩 방송하면서(망할놈의 불법 타령), 지하철 고장 나서 연착 되는 건 방송도 안 하는지 등등. 남 탓은 저렇게나 잘 하면서 궁금한 건 안알랴줌 시전.

오늘은 출근시간에 심지어 역명 공지를 하나씩 늦게 하길래 무시하려다 친절하게 문자 보냈더니 내가 탄 지하철 칸을 정확하게 얘기 하라네? 역 안내 방송 똑바로 하라는데 내가 무슨 칸에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인건지, 서비스 하나하나가 다 엉망징창인 것 같아서 혼자 속으로 부들부들 열 내다 내리니까 어찌나 피곤한지. 내 정신건강을 위해 지하철을 당분간 타지 말아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ㅠ

답답해서 서교공에 문의 했더니 뭔 객실 미려도 타령하고 있다. 누구 보기 좋으라고 선반을 없애? 온갖 광고 떡칠 해놓는 건 괜찮나? 유실물이나 유기물은 선반 없으면 발생 안 하나? 뭔 이유 같은 이유를 대야 이렇게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선반을 없앤 걸 이해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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