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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안 세상

글 읽기가 귀찮아지면

로얄곰돌이 2021. 9. 4. 00:10

‘실질적 문맹’이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칼럼(https://hankookilbo.com/News/Read/201607061477289612). 이 용어가 등장한 다음부터는 잊을만 하면 뉴스에 뜨는 흔한 표현이 된 것 같다. 글을 읽을 수는 있으나 이해할 수는 없는 경우를 실질적 문맹이라고 부른다는 것인데,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SNS 사용과 유튜브 같은 동영상 시청을 과도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요즘 주로 내근을 하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도 궁금하고 나이까지 들어 젊은 사람들 무슨 생각하는지도 궁금해서 인터넷 커뮤니티나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 댓글, 페이스북 등을 훑어보고 있는데 실질적 문맹에 대해서는 댓글에서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유독 젠더나 정치 관련 콘텐츠가 올라오면 난독증이니, 실질적 문맹이니, 지능이 어떻니(‘능지’라는 단어를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야? 라고 했다가 이해하고 나서는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왜 굳이 멀쩡한 단어를 뒤집어서 저급해보이도록 만드는건지?) 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이런 표현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 용어를 포함한 댓글들 중에 실제로 기능성을 갖춘 게 거의 없다.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콘텐츠에 대한 구체적인 평론도, 콘텐츠의 주요 내용 사실에 대한 논평도 무엇도 없이 그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상대방을 상정해놓고 악의를 가지고 욕 먹이고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분출하기 위한 것일뿐이다. 목적이 뚜렷하지만 그걸 언어의 어떤 기능이라고 쳐주고 싶지 않다.

맥락 없는 그런 댓글들은 바로 소통 도구로써의 언어, 글의 내용을 서로 이해하고 글에서 얘기하는 주장 또는 사실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아 논의를 발전시키는 바로 그 역할을 싸그리 무시하고 있다. ‘실질적 문맹이란 게 이런 거구나’를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그래서 이같은 용어들이 쓰이는 걸 읽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실질적 문맹’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그 용어가 담고 있는 함의를 알고,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을 연구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나보다 더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질적 문맹에 대한 또 다른 예는 실질적문맹을 다루는 콘텐츠의 댓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나도 요즘 책이 안 읽힘’, ‘호흡이 긴 문장을 읽기 힘듦’ 같은 것들이다. 오늘 퇴근 후에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볼까 하고 책 몇 권을 꺼내서 서문을 하나하나 읽는데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는건지, 자꾸 생각이 새길래 문득 ‘나도 실질적 문맹이 되어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스마트폰을 너무 들여다 본 듯. 눈이 건조하고 침침한 걸 보면 아마 맞는 것 같다.

이제 폰 그만 보고 공부하고 책을 읽자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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