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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벽 보고 말하는 로얄

'평소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

로얄곰돌이 2015. 6. 1. 14:17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50601122710808

 

박대통령이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 변경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서라도 입법을 막겠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그런데 기사에 쓰인 단어들이 참 기사답지 않다. 요즘 국내 언론 기사들 중 뭐 하나 신뢰할만한 게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셀프 디스ㅠㅠ) 그래도 열심히 사실 파악을 위해 노력하는 꽤 많은 기자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솟구친다. 

 

정치 관련 뉴스에서 흔히 등장하는 '평소 원칙을 강조하는'이라는 단어가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는데,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평소 원칙을 강조하지 않는 대통령'이 있을 수 있는가다. 어디 정권을 비판하면 홍차라떼를 보내준다는 모 국가라든가 수령님을 찬양 안 하면 저 멀리 탄광에 보낸다든가 하는 독재정권이 아니라면, 또는 독재정권일지라도 평소 원칙을 강조하지 않는 지도자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굳이 이런 단어를 써가면서 일종의 마사지(보통 우리끼리는 별 것 아닌 걸 그럴듯하게 포장해주거나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글을 다듬는 걸 이렇게 부른다)를 해줄 이유가 있을까 싶다.

 

또다른 이유는 실제로 대통령이 평소 원칙을 강조했는지 실제로 파악해봤는가다. 뭐 "메르스 보건역량 총동원 해야" 같은 말을 했다고 원칙론자라고 했다면 대한민국 국민 중에 원칙주의자 아닌 사람이 어디있을까 싶다. 그거 말고 언제어디서건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복적으로 본인의 사생활이건 공생활이건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원칙론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원칙주의자 인정.

 

이 표현이 가장 싫은 이유는 이거다. 기자는 원칙론자가 실제로 원칙을 예외없이 적용하는지 알아보는 사람이다. 남한테는 원칙론자이지만 나는 아닌 내로남불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비판을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연합뉴스처럼 정부지원금을 받는 매체라면 청와대 출입 기자는 보통 보수적이거나 정권 편향적인 사람이 맡는다. 대변인실과 관계 유지 차원 또는 인맥을 고려해서 그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기자가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게 있다. 권력자든 하층민이든 어떤 이에 대한 판단을 할 때는 선입견을 버리고 후광효과도 버려야 하지만 특히 권력자라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고 사회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많다. 강자에 대해 평이 후한 기자는 그래서 자질이 좀 의심스럽다. 

 

표현은 그렇다치고 위 기사에서처럼 입법에 있어서 행정부가 나대는 게 정당한가는 다른 문제다. 입법권을 국회에 준 이유는 국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기본이라는 토론 기능을 갖고 있는 것도 국회다. 국회 입법에 반하는 시행령은 상위법 우선 원칙에 따라 수정 돼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당연한 걸 논쟁씩이나 하고 있어야 하고 위헌적인 대통령의 발언을 '원칙론'이니 실드 쳐주는 언론,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블로그에서 이런 원칙론 얘기하고 있어봐야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고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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