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얼마 전에 선배랑 얘기하다가 쉽고 재밌게 쓰여졌다는 말을 들은 차에 칸초네 집에 놀러 갔더니 이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바로 빌려 왔다. 좀 어려워서 읽다가 중간에 다른 책을 먼저 읽기를 여러차례.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서 드디어 끝을 봤다.
대학 입학했을 때 인문대이니만큼 문사철을 논하는 학회들이 여럿 있었는데 신입생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던 학회에서 첫번째로 쓰던 커리가 <철학과 굴뚝청소부>였다. 잘 놀고 잘생긴 선배들(당연히 학생회 주축이기도 했다)이 많아 학생들이 그 학회로 몰렸지만 난 다른 쪽에 들어갔고 당연히 이 책은 관심 밖으로 멀어졌었다.
아무튼 철학 입문서로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 책이 쓰여진 지 10년 가까이 된 그 시절에도 쓰일 정도였으니.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푸코까지 서양 철학사를 한 권에 압축해 놨다.
그러고보니 나 입학 했을 때는 인문, 사회과학 학회들이 꽤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요즘에는 경영전략 동아리 같은 데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 땐 이런 동아리에 들어가려고 면접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건 상상도 못했다.(설마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뭐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지금 보면 대학 시절만큼 시간도 널럴하고 책을 공짜로 볼 수 있던 적도 없는데 그럼 인생 4년간 만이라도 돈과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 기력을 쏟아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어차피 일하면서 필요한 건 복사하고 커피 타는 2~3년 동안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건데 굳이 대학생들을 그 길로 모는 건 딴 생각 하지 않게 하려는 모종의 음모라고 밖에 안 보인다. 직원이 의심하고 회의를 품을 줄 알면 경영자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플테니.
비유를 통해 철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해주는 책이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력 추천! 철학책은 따분해서 금방 싫증 내고 던져버리는 편인데 조금만 끈기를 발휘하면 완주가 가능하다. 이진경씨 글솜씨가 넘 좋아서 부럽다. 이 분 강연도 들으려고 수유너머에서 하는 공개 세미나도 등록했다.
그런데 왜 철학자 한 사람 넘어가고 나면 그 전에 봤던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거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