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안 세상

엄마랑 떠나는 스페인

로얄곰돌이 2025. 1. 22. 03:50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과 채널은 정해져 있다. 뉴스는 엠비씨만 본다든가, 트로트 경연은 엠비엔만 본다든가. 그렇지만 채널을 가리지 않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여행 관련 내용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세계테마기행은 최최애와 최애! 톡파원25시라든가 현지 거주민이 소개하는 다른 프로그램들도 채널 돌리다 걸리면 꼭 보는 편이고, 연예인들 놀러가는 건 물론이고 다문화 고부열전도 거의 매주 챙겨본다. 그러니까 국가를 가리지 않고 다른 나라가 나오는 프로를 좋아한달까.

그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엄마가 항상 아쉬워하던 게 아빠랑 주로 패키지 여행만 다니다 보니 티비에서 소개하는 맛있는 걸 다 못 먹고 왔다는 점이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그러게, 나랑 낑낑이(내 동생)가 가자고 할 때 같이 갔으면 다 먹었을건데 ㅉㅉ..”하면서 핀잔이나 주곤 했다.

올해 엄마 칠순을 맞아 뭘 해드릴까 우리 남매끼리 모여서 얘길 해보다 의견이 안 모여서 그냥 엄마한테 ”원하는 걸 말하시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가족 여행이나 다녀왔음 싶은데?“
예상 밖의 답변이라 누구도 준비를 안 했는데… 문제는 엄마가 조카 꼬맹이들을 돌보는 주양육자가 되다보니 여행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 그런데 여차저차 동생 아내가 이직을 하게 되고, 그 사이 한 열흘 정도 시간이 비어서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 이번에는 가족들이 다 가기에는 스케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게 또 문제였다. 아빠는 12월 말까지 일을 나가셔야 하고.

그래서 반백수인 내가 엄마를 모시고 가이드 겸 동행이 되기로 했다. 여행지는 엄마가 함 가보고 싶다고 콕 집은 스페인.

스페인은 그래도 두 번 가봤으니 그나마 익숙하기도 하고, 그동안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좀 공부해둬서 조금은 마음의 짐이 덜어질… 줄 알았는데, 혼자 갈 때는 몸만 가면 됐는데 이제 70대에 들어선 엄마를 모시고 가려니 갑자기 의무감과 부담감이 확 들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숙소니 교통편이니 부랴부랴 예약을 시작해서 2주 전에 겨우 다 마쳤다.

여행 컨셉은 다양한 성당에 들러서 맘껏 둘러보고 오기 & 맛있는 거 먹기 두 가지로 정했다. 두번째 목표는 미리 맛집을 알아두거나 어느 지역에 가면 뭘 꼭 먹어야 한다 정도 정해두면 됐는데, 첫번째 목표 땜에 고생을 좀 했다.

역시 경험이 다가 아니고 블로그는 그냥 참고만 해야 한다. 일단 성당들이 이제는 온라인 예약만 받고 현장 예매가 없었다. 그나마 2주 전에 검색해보니 우리 일정에 몬세라트 수도원 예약 가능 날짜가 딱 하루라도 남아 있었고, 세비야 대성당도 딱 하루 시간도 애매한 1시 반 예약만 가능, 사그라다파밀리아는 아예 매진이 된 상태… (구엘공원도 전엔 아침 일찍 가면 무료입장도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고 여기도 매진이라 역시 가이드 투어를 통해 들어갔다;;)

또 나중에 직접 가보니 크리스마스에는 식당들도 문을 닫고, 연말에 유럽 애들은 각자 가족과 보내서 관광지가 널럴하다는 블로그 글들이랑 완전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문을 닫는 건 크리스마스 이브 6시 이후! 크리스마스에 식당들이 문을 안 열까봐 먹거리를 좀 사놨는데 식당들이 버젓이 다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잘 됐다며 또 맛집 가긴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몬세라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세비야 대성당 입장 시간에 일정을 어떻게든 욱여 넣는 쪽으로 계획을 다시 짰다. 이럴 줄 알았는지 혹시나 하고 숙소들을 무료 취소 옵션으로 예약했던 거 칭찬해… 스스로 어찌나 기특하던지. 나 혼자 갔으면 무조건 젤 싼 것만 골랐을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바르셀로나 숙소도 성당이 보이는 곳이어야 했고, 언제가 됐든 무조건 입장을 해야 했다. 그런데 첫째날 오후 느즈막한 시간을 빼곤 전부 매진이라니..ㅠㅠ
검색을 해보니 ‘당일 예약 가능’이라고 써 있는 예매 대행 사이트들이 좀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돈도 많이 주도 결제를 했는데, 다음날 표를 못 구했으니 결제취소를 한다는 메시지만 오고ㅠㅠ 첫째날 몬세라트를 포기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가는 방법이 있긴 했는데 문제는 그러면 발렌시아 숙소에 너무 밤 늦게 도착해야 하고… 이게 메인인데 메인이 빠진 여행은 의미가 없는 것 같고…

결국 찾아낸 게 단체 입장권을 확보해놓은 가이드 투어였다. 이것도 좀만 늦었으면 매진될 뻔 했는데 다행히도 예약이 됐다. 휴… 그렇게 부산스럽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남은 건 엄마를 상사 모시듯 대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