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으려고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에서 근무하다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의 연대 반올림이 드디어 강남역 삼성 사옥 앞 농성을 1023일만에 끝냈다. 농성은 3년 남짓했지만 투쟁은 11년째다.
나는 그 농성장에 취재를 갔었다. 이종란 노무사를 직접 만나서 그간의 투쟁 얘기와 반올림의 입장, 삼성의 행태 등을 낱낱이 들었다. 그 다음 직업병 관련 국회 토론회에도 갔다.
자랑스러워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여러 번 취재를 했지만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대변할 수 있는-상대편에서 보기에는 편파적일수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내용은 결국 한번도 제대로 기사화 못했다.
이유야 대라면 댈 수 있겠지만 참 궁색하다. 우리 회사 상황이 어떻고, 내 '공명심' 때문에 동료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고 등등 어떤 것들을 읊어봐도 변명일 따름.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는 대단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양심에 따라 펜을 든다는 기본적인 저널리즘 원칙에 눈감았다. 마음이 좀 안 좋긴 한데 그냥 그대로 하던대로 살았다.
어떻게 보면 이 사건은 내게는 내 직의 하찮음을 한번 더 일깨워 준 일일뿐이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리고 3년차에 사표를 직접 적었을 때도, 지금도 내 직의 존재가치는 참 보잘것 없다. 그런데 나는 왜 10년이나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와 내 인생을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일단 도피다. 그 직에서 해야 할 일을 못 한다면 굳이 그 직에 있을 필요가 뭐가 있을까. 기레기라 불리는 수많은 직장인들 사이에 내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탐욕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밥벌이를 하는 노동자이자 소시민이 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겠다는 얘길 몇 번이나 하긴 했는데, 남아 있는 착한 동료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꾸역꾸역 산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나는 왜이리 힘든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