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회사 선배랑 몇 달 전부터 등산 가자고 약속을 잡았다가 못 가고 못가고 겨우 오늘 시간을 맞췄는데 비가 그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부슬비라 우산 받치고 슬슬 걸어도 괜찮겠다 했는데 막상 나가보기 바람 때문에 빗줄기가 풀풀 날려서 걸어다니기 과히 좋지 않았다.
카페에 가서 마이클샌델 교수가 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나 마저 읽었다.
'주말에 어디로 갈까?'하는 건 나한텐 꽤 심각한 문제다. 좁은 집에 있기는 갑갑하고 어디든 가서 책이라도 읽을 곳을 찾아야 하는데 딱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창을 환하게 열어 젖힌 카페가 있길래 자리를 잡았다. 까페라떼 한 잔에 3700원. 비는 촉촉하게 내리고 내겐 자리가 있고 주말이라 여유있고. 이런 기분을 느끼는 데 3700원을 내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집 근처에는 서울대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대 도서관은 일부나마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었고 통창이 시원하게 두 면을 두른 그 곳을 즐겨 찾곤 했다. 매점에서 파는 커피값도 쌌다. 당연히 책도 보고 공부도 하러 자주 다니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보니 외부 개방 도서관도 출입 카드를 따로 발급 받도록 했고 매점에서 파는 커피값도 재학생과 외부인에게 가격을 달리 받고 있었다.
나는 국립, 사립을 불문하고 대학은 지역 사회에 개방되고 지식이 전수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학교 문을 평등하게 열어 놓아서 학생들이 지역사회와 교류를 하게 된댜면 그보다 좋은 공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엘리트만의 성역에 갇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문적 업적이나 성취를 이뤄봐야 사회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상아탑 안에서만 아무리 대단한 학문적 성과를 낸다 해도 그 업적이 별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교육기관에 세제 혜택이 돌아가는 것도 머리 좋게 태어나고 남들보다 끈기까지 갖춘 너희들이 적은 등록금으로 공부해서 사회에 기여하라는 뜻이 있는 것일테다.
학교 재정이 열악해서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없으니 출입을 막고 그 이유 때문에 밥 값, 차 값까지 차등하고 엘리트 학생들과 지역 사회를 구별짓기 해야 하는 거라면 시민 사회는 그 재원을 기꺼이 감당해 줘야 한다. 하지만 국립대학 마저도 공적인 가치와 점점 유리시켜가는 지금 분위기라면 대학이 점점 개인적인 성취 수단,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밖에 되지 않겠다 싶다. 그렇게 되면 도대체 대학이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튼 이런 걸 생각하게 된 계기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많은 현상을 경제적인 효용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곤 했다. 이를테면 직업을 바꿀까 말까 고민하는 와중에 "지금까지 해 왔던 이걸 '매몰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둬야 할까, 아니면 아까우니까 계속 해야 할까?"라든가 하는 말을 쉽게 해왔다. 직업에 내게 주는 가치가 돈을 번다는 것도 있지만 보람이 제일인데 그걸 경제적인 잣대로 바라보니 뚜렷하게 답을 내릴 수 없었나보다.
새치기, 인센티브 등 이미 돈의 가치와 단단하게 결탁해 있는 분야 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치도 못해봤던 생명보험 시장이나 명명권과 광고 까지 읽고 보니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부자 되세요"가 왜 그렇게도 들을 때마다 거슬렸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돈으로 교환 가격을 매기는 것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
결국 샌댈 교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 문장에 함축돼 있다. 여기에서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만 나왔지만 일반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마케팅 담당자들이 학교 문을 밀고 들어오면 재정적으로 허덕이고 경기 침체, 재산세 상한제, 예산 삭감, 입학생 수 증가로 비틀거리는 학교들은 이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학교보다 더 큰 잘못은 우리 시민에게 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 필요한 공공자금을 늘리지 않고 버거킹과 마운틴듀에 아이들의 시간을 팔고 아이들의 마음을 빌려 주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써야 할 지도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요즘 만나는 많은사람들이 '편리함' 또는 '평등' 이라는 말을 붙여서 그동안 돈이 개입하지 않던 많은 분야를 사업화하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침체가 불러 온 갈곳 없는 자본들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고.
책 선물 해주신 김 선배에게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