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파리에 다녀왔다. 본문
전부터 프랑스는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언제까지 때를 기다릴게 아니라 그냥 짧더라도 휴가 때 다녀오자 싶었다. 일정은 7박9일, 첫 이틀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빌려서 지베르니-에디프-에트르타-몽생미셸을 다녀왔는데, 운전하는 것도 정말 즐거웠고(내가 언제 170킬로로 달려보겠냐) 경치든 뭐든 다 좋았다. 영국 연수간 선배를 항구에서 픽업해서 같이 다녔는데 그것도 신선한 경험. 그 다음은 평범하게 파리 시내, 미술관, 에펠탑, 샹젤리제, 베르사유 등등. 소매치기한테 돈이 다 털린데다 시간도 없어서 쇼핑은 안하고 루브르박물관, 뽕삐두센터, 오르셰미술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첫 숙소가 몽마르뜨 쪽이었는데 치안이 안 좋다던 평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늦게까지 불켜진 식당이 많고 북적거려서 그냥 그쪽에서만 묵었다.
그런데 내가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한국에서 일이 터졌다. 돌아와서 하루종일 잠만자다 일어나서 이사람 저사람이랑 통화를 했는데, 돌아가는 꼴이 내일 출근하는 게 두려울 정도다.
낮잠 길게 자고 저녁에 열받은 통에 막걸리를 한병을 쭉 마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머리가 너무 아프다. 오래간만에 전에 없던 투지도 생기긴했는데,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해서 잠은 못 자겠다...
부러운 민중들.
휴가 다녀오면 예전처럼 무기력했던 때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었는데... 기대는 무참하게 깨졌고, 예정된 수순대로 그렇게 흘러간다. 슬픈 예감이 실현될때는 한치의 오차도 없다. 그게 가슴아프다.
예민한 예술가들이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었나보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있다."
"우리는 왜 항상 작은 것에만 분개하는가."
고맙소. 그대도 얼굴이 좋지 않구려. 서로 위로합시다.
(프랑스, 2014.9.1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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