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미국,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 미국 단상과 무한반복 뉴스 본문
클리블랜드까지 왔으니 야구를 사랑하는 로얄이가 야구장에 안 가볼 수는 없지. 오후 일정을 끝내고 프로그레시브 필드로 향했다. 다운타운 초입에 있는데 남쪽에서 접근하면 주변 지역이 상당히 낙후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싸리눈이 추적추적 내리고 차도 막히고 시즌도 아니라 그냥 차 타고 밖에서 구경만 하고 왔다.
저 멀리 깃대가 보인다.
다운타운을 한 바퀴 돌고 나와서 본 앞모습. 작년까진 시즌 때면 야구장 주변에 추신수 사진이 나부끼고 있었을텐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유를 해봤다. 내가 렌트한 차가 휘발유인지 경유인지 주유소 들어서기 전까지 몰랐다는 게 부끄럽다. 주유구를 열어보니 '가솔린'이라고 씌어 있어서 그 때서야 알았다. 미들랜드 사시는 황 모 박사님한테 주유하는 법을 배워 왔기 땜에 수월하게 만땅을 채웠다. (꼭 마지막에 흔들어서 빼야 한 방울이라도 더 넣을 수 있다고.ㅎㅎ)
오늘까지 고생한 로얄이에게 스스로 주는 상... 이라기 보단 주변에 밥 먹을 데가 없어서 호텔 레스토랑 갔다가 기왕 온 김에 먹자며 시킨 필레미뇽. 레드와인인 줄 알고 시킨 'La Terre'가 화이트와인이었다. 그래도 맛이 괜찮아서 그냥 마셨다.
원래 출장 가면 아무리 피곤해도 온 동네를 돌아다니곤 하는데, 미국에서는 혼자 돌아다니기 무섭다. 아무 생각 없이 왔지만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워낙 신신당부 하니까 '아 여기가 배짱으로 다닐 곳은 아니구나'라는걸 깨달았달까.
심지어 황박사님은 미들랜드(새기노)에서 클리블랜드 오는 동안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할 동네까지 일일이 짚어주셨다.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흥했을 때 생겨난 도시들이 지금은 쇠락해서 위험 지역이 됐다는 것. 구분법도 알려줬다. "거리에 흑인들이 길을 건너고 있으면 무조건 빨리 벗어나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에는 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노하우도 알려줬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클리블랜드는 다운타운과 외곽 주택가를 빼고는 위험한 곳인 것 같다.
흑인이 도시 인구의 절반이라는 이 곳이 더 재미있는 건, 서비스 직종 종사자가 대부분 흑인이라는 점이다. 호텔 프론트나 레스토랑 서버, 편의점 알바까지 전부 흑인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 본사에 갔더니 지나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흑인이 대통령까지 하는 마당이지만 현실에서 미국은 이미 계층간 사다리가 사라진 나라가 된 것 같다.(물론 내 이런 판단은 중동부 일부 지역만 보고 하는 얘기지만...)
또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한 건 뉴스 보도다. 미국 와서 호텔에 있을 때는 계속 CNN을 틀어놓는데, 내용이 무한반복 되는 것도 그렇지만 주요 뉴스가 마녀사냥식 보도라 좀 짜증이 난다. Jodi Arias라는 젊고 섹시한 여자가 2008년 총 맞아 죽은 남자친구 때문에 심경 인터뷰도 하고 동정을 받아왔는데 사실 알고 보니 남자친구를 죽인 건 그녀였다. 검찰이 드디어 그 사실을 밝혀냈고 그녀는 지금 재판 중. CNN은 재판 과정을 일일이 보도하고 있다. 조디가 법정에서 울었다는 내용이 굉장히 비중있게 다뤄지고 그녀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논쟁도 벌인다.
#사다리 걷어차기. 어제 오늘 또 주요한 이슈는 '시퀘스터'라고 하는 지출 자동 삭감 제도에 대한 것. 말하자면 재정지출을 자동적으로 줄여나가는 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오바마가 그걸 막으려다 실패했다. 내가 다닌 곳들이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미국은 이제 세계의 소비 시장이자 부유한 나라로는 보이지 않는다. 빈부격차는 확연해 보이고 계층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 그 와중에도 공공 일자리 등을 창출하던 재정지출을 삭감하는 조치라니. 전 세계적으로 있는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는 나라. 플로리다에 있는 한 조용한 마을에서 땅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 발생. 구멍이 뚫린 곳은 어떤 집의 침실이었고, 거기 있던 남자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형이 울면서 인터뷰 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여긴 갑자기 땅이 꺼지기도 하는 곳이로구나.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미국에서 정착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근교 실리콘밸리에 갔을 때는 살고 싶은 나라였다. 그런데 몇 천 마일 떨어진 중동부 지역에 오니 피폐함과 무료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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