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들 좀 하세요.
요즘처럼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게 겁날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이 어김없이 그 얘기를 꺼낼 때는 ‘아... 이사람 마저도’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부동산에 이렇게나 열광적인 시절이 있었던가.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라지만 그 탐욕을 가감없이 드러내고,그 끓는 냄비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이 이리도 많았는지, 그것도 정말 안 그럴 줄 알았던 주변 사람들마저 이렇게 변할줄이야.
너무들 신이 나 있어 “제발 그만들 좀 하세요.”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둘러둘러 다른 얘기, 우리 얘기, 서로의 취향으로 주제를 돌려보려는 노력을 해보다 끝끝내 마무리는 집과 억으로 맺어지는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는 길이 너무 씁쓸하다.
오늘 눈을 떴을 때도 어제 일이 생각나서 속이 답답했다. 뭔가 마음 둘 곳을 찾다가 케이블티비(이제는 sk가 인수해서 ip tv라는데 제일 싼 요금제를 쓰니까 별 달라진 건 없다)에서 무료 영화로 올라온 ‘소공녀’를 보게 됐다.
아... 이런 삶도 있구나. 혹자는 어른들의 낭만 동화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철없고 무책임하다고 하는 미소의 삶이 참 괜찮아보이더라. 세상은 사회는 국가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 편하게 누워 잘 수 있는 곰팡이 안 슨 집 한 칸은 마련해줘야 한다.
이어서 본 영화는 ‘미안해요, 리키’(오늘 총 4편 봤다). 이 영화를 보고 빨래를 널면서 배달 일은 이제 관두겠다 맘먹었다. 안그래도 무슨 보험료니 뭐니 2만원 벌면 거의 5000원 가까이 떼가는 통에 돈 버는 재미도 없어지려는 참이었다. 돈 벌어먹기 참 고약하고 고단한 세상. 가뜩이나 피곤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왜 더 가혹한 건지ㅠ 켄로치라는 거장 감독이 있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겠지만 영화에서 보는 영국 시스템은 정말 끔찍하다. 뭐 어느 나라나 돈 있는 사람들은 편하게 살겠지만... 그리고 플랫폼 노동 좆까. 시벌놈들 노동법 피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진짜.
내친김에 무료영화 목록에 올라온 영화 중에 ‘타인의 삶’도 봤다. 대충 어떤 영화인지 알고 있었지만 결말의 반전이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뭘까. 인간은 왜 변하고야 마는가. 인간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는 아닐까 등등 여러가지 잔상들이 머리를 채워 어지럽다.
그대로 자면 악몽 꿀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봤다. 딱 봐도 재미없고 성실해보이기만 한 교사가 우연한 사건에 휘말린다. 그 사건으로 얻게 된 책을 중심으로 독재 체제와 반독재투쟁(레지스탕스)의 아픈 기억이 현재에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는지를 추적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스위스 출신)에게 포르투갈 사람이 독재를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이해하기 어려울거라고 얘기하니 주인공이 겸연쩍어 하던 모습이다. 식민지든 독재든 경험해보지 않은 국민은 어떤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잡념으로 시작해서 영화로 꼬박 채운 하루다. 일 한다고 애 쓸 때보다 훨씬 잘 보냈다. 하기 싫은 일이니 열심히 안 할거라고 오늘도 다짐했다.